2011년 10월 1일 단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될 지 모르겠네요.
물론 제가 직접 찍은 사진이지만 이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으로 웁니다.
2011년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면서 돈을 모아 반드시 현장답사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왜 "현장답사"라고 표현하냐구요?
그 이유는 제가 석사논문을
"중국 해양력의 한반도 동해 진출 전략 연구: 네트워크 세계정치 이론 분석" 이라는 제목으로 썼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졸작이니 찾아보시지는 마시구요.
이번에 이 논문을 아예 다시 써서
"변방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동북아 네트워크(가제)"로 5월 책이 나오는데,
그 책으로 많은 분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많이 배우는 지침서로 삼을까 합니다.
어쨋건,
단둥에 가는 길은 저의 가슴을 너무 벅차게 했습니다.
일정을 너무 긴박하게 짜서 더 자세히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더군요.
<지도 정보: baidu, 관련 일정 표시는 본인이 직접 작성>
예전에 블로그에서도 일정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아직 못보신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면..
2011년 10월1일부터 2011년 10월 8일까지의 일정이었고,
베이징-단둥-다롄(뤼순)-투먼-훈춘(방천)-옌지-카이샨툰-옌지-베이징의 일정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녀온 지도 그려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중동아프리카학과에 있었던 노경민 군이
위에 보이시는 제 페이스북 지도를 보고 탈북자 루트 같다고 댓글달았던게 생각나는군요.
사실 탈북자 루트 같은게 아니라 탈북자 루트입니다. ;;
그래서 그 댓글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던게 기억이 나는군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하라는 일은 안하고 가기전에 철저히 사전조사했습니다.
구글 지도 들어가고 실사 버전 들어가서 최대한 시뮬레이션을 짜고 일정을 짜고 그랬습니다.
어찌되었건 북중 간의 변경지역을 가는 것이고 너무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기 때문입니다.
단둥 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택시를 타고 신압록강대교 건설 현장에 갔습니다.
신압록강에 대한 이야기는 5월부터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현장에 다녀올건데 관련하여 업데이트된 소식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11년 10월 1일 당시 신압로강 대교 건설 사진, 관련 업데이트 및 자료 소개는 차후에 하겠습니다.>
압록강을 처음 바라보는 기분은.. 그때 그 기분을 제가 잊을 수 있을까요?
너무 긴장해서 경직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저 압록강 넘어가 북한이라니.. 신의주..
뭐랄까요.. 조선시대의 청나라로 넘어가는 사신이라도 된 느낌이었습니다.
단둥..
이성계가 말머리를 돌렸다는 위화도가 마주하는 곳..
연암 박지원이 베이징과 청더(승덕)으로 가기 위한 이국의 첫 방문지..
신압록강대교.. 랑터우항에서 월량도까지 타고왔던 택시를 타고 다시 갔습니다.
중국령의 압록강 섬이지요.
압록강 중간에 있는 섬으로 호텔과 놀이공산 비슷한게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북한에 보이기 위한 시설 같기는 했지만 나름 운치있고 좋았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월량도이지요.
크기는 음.. 한국외대 정도의 1/2 정도였습니다.
정말 크기가 작다는 의미지요.
월량도부터 위화도 건너편까지 정말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했습니다.
온 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공간은 시간의 결정체(結晶體)라고 Manuel Castells가 말했었죠.
정말 이 공간 위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월량도를 가볍게 돌고 압록강을 쭉 타고 걸었습니다.
생각하고 걷고 생각하고 노트북까지 들어 너무 무거웠던 가방이 제 인생의 무게라 생각하며..
이 글의 첫번째 사진이 월량도에서 막 빠져나와 찍었던 사진입니다.
월량도에서 나오는데 비가 갑자기 내렸습니다.
우산도 없었는데 그냥 다 맞았습니다.
가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구요.
지나가는 소나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제 눈앞에 딱 !! 있더군요.
앞에 보이시는 강이 바로 압록강입니다.
건너편은 북한의 신의주.. 요즘 정말 핫플레이스지요.
압록강에 무지개가 두개나 생겼습니다.
주민들도 참 보기 드문 광경이라 그러더군요.
비를 맞아 더 무거워진 가방을 잠시 내려두고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또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그랬습니다.
비.. 그리고 무지개.. 다시 그 무거운 짐... 무거운 발걸음... 하지만 내부에 멈추지 않는 내 열정..
지금 맨 첫 사진은 저의 페이스북 커버사진입니다.
반드시 새로운 네트워크를 그려 통일과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를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1시간 30분 넘게 걸으니 압록강단교가 나오더군요.
짜잔 !! 그렇게 힘들고 힘들던 걸음 끝에 드디어 도착.
물론 철저히 시뮬레이션을 통한 준비를 해와서 어떻게 길을 가는지
지금 보는게 무엇인지 다 알고 왔습니다.
제가 나름 살아있는 네비게이터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 현장답사에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 ;;
그런데 거리에 대한 감이 없어서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는 단점이 있었죠.
밑에도 계속하여 사진이 있지만 자세히 보시면 한쌍으로 된 철교입니다.
위에 있는 그림은 .. 음..
아무리 찾아봐도 철교 다리 밑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았길래,
제가 직접 찍어본 것입니다.
(물론 여기 올린 사진은 전부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인용할 때 출처 꼭 !!)
일제시대에 일본애들이 만주로 넘어오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데 아직까지 짱짱하게 쓰고 있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더군요.
전에 압록강 단교에 대해 간단히 설명은 드렸지만 다시 알려드리면,
압록강대교는 한쌍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압록강철교라고도 하더군요.)
그중 중국을 등지고 북한을 바라보는 방향(즉 남향)으로 보았을 때
왼쪽이 온전하게 이어진 쪽이고
오른쪽이 끊어진 다리, 즉 단교(斷橋)입니다.
일제시대에 한반도에서 만주로 넘어가기 위해 일본애들이 건설한 것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전투기 폭격을 통해 중공군이 넘어오는 것을 저지했다는 스토리가 있지요.
그리서 중국 사람들은 이를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상징이라 단교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항미원조(抗美援朝)가 뭐냐구요?
"미"는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구요. "조"는 북한(조선)을 의미합니다.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조선)을 돕는다는 의미이지요.
중국 사람들은 북한을 조선이라 부릅니다.
예전 1980년대까지 남조선, 북조선이라 부르다가
전두환 시기 중국 여객기가 한국에 불시착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이 잘 처리해줘서
그 때부터 한중 간의 관계가 좋아졌고,
중국이 한국을 남조선이 아닌 한국으로 불렀고,
중국이 북한을 북조선이 아닌 조선이라 불렀다더군요.
왜 이런걸 다 아냐구요?
옛날 뉴스 뒤져보면 이런거 다 나옵니다.
어찌되었건 단교는 중국에서 압록강 중간까지는 남아있고
단둥의 관광명소가 되었지요.
당시.. 완전 긴장했던... 이창주 님_
이곳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표를 산다면요.
당시 하필 중국의 국경절이라 사람이 북적였고,
또 한국전쟁에 큰 의미를 두고 있던 중국 사라들이 많이 찾아왔더군요.
한국 사람들도 꽤 보였는데, 혼자 온 사람은 역시 저밖에 없었습니다.
단교 끝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국 전쟁의 흔적이지요.
아까 제가 인용한 말 생각나나요?
공간은 시간의 결정체라는 마뉴엘 카스텔스의 말_
폭격에 의해 엿가락처럼 휘어진(오랜만에 쓰는 표현이네요) 단교를 보며 또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또 지금 저기 서있던 곳이 바로 압록강 중간 지점이었지요.
이곳에 또 돈을 내면..(징한 놈들..) 망원경으로 북한의 신의주를 아주 희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보이냐구요?
압록강에서 빨래하는 아줌마가 살짝 보일까말까 정도..
확실히 북한은 전기 공급이 부족하나 보더군요.
밤이 되어도 북한은 전기 없이 횃불(?)로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단둥은 텅텅 비어있는 아파트도 온갖 전깃불로 치장을 해놓았더군요.
왜 그런지 아시죠? 중국의 프로파간다입니다.
석양.... 아 글도 썼는데...
단둥의 석양은 뭔가 심심했지만 그래도 역시 은은한 맛은 있더군요.
이 사진을 바라보는 것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단둥, 왼쪽이 신의주입니다.
별로 감흥이 없으시다구요?
오른쪽이 중국, 왼쪽이 북한입니다. (역시 프레임의 힘이란...)
벌써 어두워지다니.. 갈 곳이 너무 많은데...
이쯤 되니 아까 걸어왔던게 너무 후회되더군요..
역시나.... 단교를 다시 건너서 돌아오니 석양이 보라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더니 점차 압록강 쌍교 (욕 아닙니다.)에 전깃불이 번쩍번쩍 !!
제가 개인적으로 물을 너무 좋아하는데,
압록강 물 위에 비쳐진 전깃불이 춤추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중조변경 압록강 단둥이라 써져있는 비석 비슷한거 보이시나요?
저거 가짜입니다.
사진찍으라고 여기 상인이 복제판 놔둔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멋져 보이니 압록강대교를 배경으로 사진 찰칵 !!
위화도 건너편까지 미친 듯이 갔다가 다시 단교로 돌아오니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위화도 사진은 왜 올리지 않느냐구요?
너무 컴컴해서... 사진이 너무 안나오더라구요.
북한 사람들이 전깃불을 쓰지 않고 횃불(?)을 쓰니 이거 원.. 사진이 안나왔습니다.
이번에 단둥 다녀와서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깊은 밤에 다시 도착한 단교는 역시 너무 예뻤습니다.
느낌이 또 다르더군요.
여기에서 또 장사쟁이 단둥 상인들은 앞에 보이시는 등을 팔더군요.
종이로 되어 있는데, 저걸 펴서 안에 양초를 넣으면 바람을 타고 신의주로 날라갑니다.
압록강 위에 꽤 많은 것들이 떠다니죠?
저도 하나 날려보냈습니다.
살짝 적벽대전 Feel도 나고.. (?) 아무튼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80위안짜리(한국돈 약 만원 넘는 가격) 여관을 어렵게 찾아서... 다시는 그런데서 자고 싶지 않더군요..
대련으로 가기 위해 잠을 청했습니다.
물론 여관에 짐을 놔두고 근처 꼬치집에 가서 압록강 맥주에 양꼬치를 먹기는 했지만요. ㅋ
자는 곳도 별로고 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원래 제가 아침형 인간이기도 하거니와
자는 곳도 불편하고 또 이 공간과 이별하기 전에 한번더 둘러보고 싶기도 했구요.
근처에 있는 단둥 세관, 역, 구도심 시장, 전부다 조사하고 인터뷰하고 그랬습니다.
관련 자료는 추후에 업데이트와 함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온전하게 이어진 철교는 철도길과 도로가 함께 있습니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화물트럭이 지나갈 수 없고,
화물트럭이 지나갈 때는 기차가 지나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2014년에 신압로강 대교가 완공이 되면 도로는 그쪽을 쓰고,
이곳은 아마 철로로만 쓰여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2013년 1월 1일부터 베이징-단둥-신의주-평양 라인이 매일 운행됩니다.
구라치지 말라구요?
http://news.sina.com.cn/o/
관련 중국 신문 자료입니다.
지금 한국만 신경쓰지 않고 있는 이슈이지요.
지금도 북중 간의 교류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은 자기 자가용으로 나선특별시 들어가 여행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핸드폰 사용도 가능하고 심지어는 3G 인터넷도 사용 가능합니다.
이 외에도 저의 정보원(?)들..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저에게 정보를 알려주시는 많은 분들의 제보(?)에 따르면 더 놀라운 사실들이 있으나
제가 직접 문서로까지 확인한 것들만 말씀드립니다.
왜... 한국만 모를까...
참... 아쉽네요..
어찌되었건 저는 다시 아침 일찍 단둥의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이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게 잘 막고,
그 북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위협이나 그런거 이제 그만하라고 그러고
안정적을 개혁개방할 수 있게.. 우리가 어떤 전략을 짜야할지...
이런 고민을 하며 다음 장소로 옮겼습니다.
저작권 관련하여..
지금 올리는 모든 사진은 2011년 10월 1일과 2일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혹시 사용하시게 된다면 사용하셔도 괜찮으나 사진의 출처를 꼭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 외교전공 박사과정에 있는 이창주입니다.
특히, 관련 기사자료를 쓰시는 기자분들, 사진을 쓰신다면 환영입니다만
꼭 출처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단둥에 조만간 또 다녀올 계획입니다.
돈도 안되는 짓을 왜 자꾸 어려운 살림에 하냐구요?
배움에 대한 갈구, 꿈을 위한 열정이라 대답하겠습니다.
올해 5월에 책이 한권 나옵니다.
그때 맞추어 제가 그린 삽화와 사진 대량으로 다시 올려 설명할 계획입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여행했던 것들을 서술하여 쓰는 형식으로 올리구요.
조금이나마 제 블로그를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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