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센터는 중국 상하이 푸동 루찌아쭈이 금융무역구 핵심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참고로 루찌아쭈이는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본 건물은 높이 632m로 지상 127, 지하 5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081129일부터 건설을 시작했으며

2014년 말에 기반 공사가 완공

2016312일에 상하이 센터 빌딩 모두 완공되었습니다.

 

상하이 센터는 지상 127층 건물 중에 

118층과 119층에 전망대가 위치해 있습니다


118층은 월~1주 내내 9:00-21:00 개방하고

119층은 토~9:00-21:00에만 개방합니다


1층에서 표를 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18층까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119층은 118층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상하이 센터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속도 빠르기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데 실제로 타보니 금세 118층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대 표 가격은 성인 180위안이고

학생과 60세 이상은 신분증 제시 조건으로 120위안으로 할인 받을 수 있습니다

1~1.4m 어린이는 90위안, 1m 이하의 어린이는 무료로 입장 가능합니다.   



위의 사진은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한 상하이 센터 1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 중에 현재 상하이 센터의 모형은 가장 위 왼쪽인데요.

원래는 이렇게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다고 하네요.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상하이센터 빌딩 모형은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공식적이지 않다고 말씀드린 것은 상하이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상하이 센터 건물 모형 후보군 사진"의 바로 윗사진처럼

사각형의 판유리들이 원형을 그리며 전망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원형으로 되어 있다보니 

제가 보기에는 살짝 확대되어 보이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려보겠습니다. 


전망대 방문 시간대는 석양이 지는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그럼 밝은 조망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더라구요.



저기 위에 흐르는 강이 황포강입니다. 

상하이 시내를 가로지는 강으로 포동(푸동)과 포서(푸서)를 가르는 기준이죠. 


아래 왼쪽 건물이 진마오따샤金茂大厦(88층), 

오른쪽 건물이 글로벌금융센터(100층) 건물입니다.


이 두 건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니 

상하이에 5년 넘게 살고 있는데 

그래도 좀 어색하기도 하구요.



글로벌 금융 센터를 아래부터 전체 사진으로 촬영해봤습니다.




황포강黄浦江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황포강은 북쪽으로 흘러 장강长江(양쯔강) 하류와 만나고 

그 장강은 다시 동중국해로 흐르게 됩니다. 조만간 관련 사진 올려 설명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에 보시면 황포강 윗쪽에 

조그만 하천이 황포강으로 합류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천이 소주하苏州河라는 하천인데 

소주하를 중심으로 왼쪽에 아편전쟁 이후 대영제국 총영사관 건물,

오른쪽에 러시아 총영사관(현재도 그대로 씀), 미국, 일본 등의 총영사관이 있었습니다. 


와이탄外滩Bund라고 불리는 곳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영미 종합 조계지였습니다. 


그 건너편인 루찌아쭈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죠.

대표적인 건물이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동방명주东方明珠 입니다. 


마천루는 그 뒤로 찐마오따샤, 글로벌금융센터(环球金融中心, 병따개 건물)

그리고 상하이 센터 빌딩으로 이어지며 높아지고 더 높아졌습니다. 


와이탄에서 바라본 루찌아쭈이는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아래는 야경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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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해양 분야 전문가이신 주강현 교수님과

최재선 KMI 연구위원님을 모시고 출장 지원을 다녀왔다. 


정화 대원정의 시발점인 장쑤성 난징 江苏省南京에

두 분을 모시고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관련 일정을 간단히 사진과 함께 설명, 

그리고 당시 페북에 남겼던 글을 블로그에 기록해둔다. 



1. 장쑤성 난징(남경)에 위치한 해상 실크로드 주인공 정화(郑和)의 묘


정화묘(郑和墓)

 

정화는 중국 명대(1371~1433) 운남성 곤양주 사람으로 회족이다. 원래 성은 마() 씨이며, 후에 주어진 성이 정()이다. 정화는 명대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한 항해가이다. 14057월부터 1433년까지 직접 영락제의 명을 받고 200여 척의 선박함대를 이끌었다. 당시 관병은 27천 여 명이 동행했으며, 선박을 수리할 목수들도 함께 동행했다. 정화는 7차례에 걸쳐 함대를 이끌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40여 개의 국가와 지역을 방문했으며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정화와 관련된 관광지는 해상실크로드를 타고 다양한 지역에 분포해 있으나 정화의 묘는 남경이 유일하다. 남경의 남부 우수산(牛首山)에 위치한 정화의 묘는 현재 강소성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있던 곳은 파괴되었으며, 1984년과 2005년 양 차례에 거쳐 복원되었다정화의 묘는 원래 정화묘에 있던 석재를 묘위에 얹어 복원된 모습으로 현재 보존되어 있다




2. 정화의 조선소


龙江船广遗址 정화 조선소 유적지

 

20038월부터 20047월까지, 남경시 박불관은 룽장(용강)에 위치한 명나라 보선광(宝船厂; 조선소) 유적지 "육자당(六作塘)"의 발굴을 진행했다. 이는 중국의 고학계 첫 선박 조선소 관련 유적지 발굴 사업이었다. 1년 가까운 시기에 약 2가가운 면적이 발굴되었는데 다량의 진귀한 문물 자료가 출토되었다. 600년에 가까운 역사기록이 처음으로 발굴된 것이다. 이 용강조선소유적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남경시 박물관에서 개최한 宝船·西洋·郑和에도 소개된 바 있다. 2003년 여름, 당시 유적지 발굴팀은 3개의 길이 400~500m, 넓이 40~50m의 선형 수로를 발견했는데 장강을 향해 일자형으로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600년 전 정화의 선박이 조선되었던 주요 지역이었다.





3. 난징 중산부두(중화민국 시절 중요 내하항만), 장강(양쯔강)




4. 부자묘夫子庙 : 해상 실크로드 당시 장강으로 이어지는 피더항 역할 담당.




5. 남경대학살 추모관



남경대학살 방문 직후 페북글.


南京大屠杀 남경대학살 추모 기념관에 다녀와서.


내부의 다수 여러 사진들이 있지만 차마 올릴 수 없다. 너무 잔인한 모습들을 현실적으로 묘사했고, 또한 희생자들의 실제 유골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남경대학살은 1937년 12월 부터 1938년 1월까지 6주에 걸쳐 남경에서 발생했다. 당시 일본 군은 28 차례에 걸쳐 대량 학살을 자행했는데 당시 돌아가신 분들이 19만 명이고, 산발적으로 살해당한 사례가 858 건이며, 이후 다시 사망자가 15만 명에 달한다.(남경대학살 추모 기념관 자료) 그래서 중국은 30만명의 사망자라고 정리해 말하고 있다.


남경대학살뿐만 아니라 동북지역에서는 731부대에 의해 생체실험 당했던 역사는 어떠한가. 지난 번 하얼빈에서 731부대가 자행했던 끔찍한 역사의 단편을 731부대 전범죄 전열관에 방문해 살펴봤다. 속에서 번져나오는 분노와 슬픔은 잊을 수 없다. 남경대학살 추모 기념관에서도 보는 내내 슬픔이 깊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남경대학살 추모 기념관은 실제로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장소 위에 추모 기념관이 건설되었다. 1만 여명의 유골이 묻힌 지역이 실제로 전시된 곳도 있다.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에 올리지는 않겠다. 나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 했고 기도문도 제대로 외우지 못 하지만 그 분들을 위해 성호를 긋고 평안을 기원한다 짧게 기도했다.

지금 보이는 사진은 추모 기념관에서 희생자들을 위해 영령을 모시는 곳으로 아래 꺼지지 않는 불을 올리고 국화 형상으로 영령을 위로하고 있다.


저곳을 지나가는데 한 사내가 내 옆을 지나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저기 보이는 불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갔다. 그 사내의 아내는 뭐하는거냐고 물으며 만류했는데 그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들을 데리고 저곳 바로 앞까지 갔다. 그리고 그 아들과 함께 저 영령을 향해 묵념을 하고 돌아왔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도 제2차 동학농민운동 때 수십만의 백성들이 도륙을 당했고, 독립군을 지원했거나 혹은 그들이 활동했던 지역의 주민이라는 이유로 집단 학살 당했다.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은 고문과 함께 희생당하거나 생체실험 당한 분들도 많다.


지난 정권에서 국정 교과서는 일본의 침략과 독재를 미화했고, 외교부는 일본과의 협의 과정도 공개하지 않고 "위안부"협정을 발표했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께는 과거는 잊으라는 식으로 돈 봉투를 흔들었다.


내 눈 앞에 자신의 아들을 끌고 저 영령을 추모하는 공간에 함께 묵념하던 저 사내의 모습 앞에 나는 무력했다.

일본을 적국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 역시도 우리에게 소중한 협력 파트너이다. 민간 교류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동북아 평화 구축을 위해 역사를 더더욱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했던 수모를 바로 알고 역사를 제대로 분석해야 우리가 올바로 동북아 내 구성원으로서 평화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폭력으로부터 지키지 못했던 우리의 무능함, 그리고 그런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부조리함을 철저히 분석하여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적으로 순활하고 우리의 인식 속에 정착해야 만이 국가구조를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가 중요한 시점에 많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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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통역 및 가이드 업무를 맡았다.

KMI의 부탁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달려간다.


이번 방문은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분들을 모시고 일을 진행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외고교), 양산항, 베이와이탄,

국제 선사, 중국 선사, 한국 선사 간담회를 갖었다.


마지막 날에는 닝보-저우산 항에 방문해 현장의 다양한 상황을 살폈다.


개인적으로 양산항은 3번째 방문이고, 닝보-저우산항은 5번째 방문이다.

기존에 내가 갖은 자료도 있었고 이번 방문을 통해 업데이트를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도 특히 항만 그룹 내의 사정과 현재 건설되고 있는 터미널 현황, 용도 등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혹여 인터뷰 내용 중에 거짓이 없는지 증명하는 절차도 개인적으로 진행해봤다.


이번 통역과 가이드에서 나름 최선을 다 했는데

인터뷰 중 뉘앙스라던지 말투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감정 등도 전달하기 위해 힘썼다.

또한 혹여 궁금하신 사항들이 있다면 되도록 놓치지 않고 검색을 통해서라도 말씀드리려 애를 썼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나에게 인센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한국의 항만과 해운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서 해운 시황도 좋지 않다.

항만 터미널 사와 선사 간의 비용 문제 해결도 쉬워보이지 않는다.


국제 정세의 흐름 역시 녹록치 않은 가운데

시장의 흐름은 효율성을 선택하는 추세이다. 일종의 견디기.


더 자세한 자료들을 확보한 상황이나 어떤 매체를 통해서건 개인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

단지 내가 다녔던 지역의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이번 일정을 정리하고자 한다.


아래 사진은 상하이 양산항 전망대와 본부, 그리고 닝보-저우산항 항만그룹 본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이중에 상하이 양산항 본부와 닝보-저우산항 항만 그룹 본부는 일반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이제 정말 확신이 든다. 내가 그렸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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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들어 가볍게 바람 쐬고 온 다롄(대련; 大连) 싱하이(성해; 星海) 광장

싱하이 광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광장이라고 한다.

다롄 도시 개발의 특징 중 하나는 저렇게 원형 광장이 많다는 점이다.


싱하이 광장 앞은 황해인데 광장 바로 앞으로 대교가 건설되어 있다.

저 대교는 복층형으로 1층과 2층이 각각 반대방향으로 차가 지나간다.


사진 찍은 곳은 잠시 근처 고층 건물에 올라가 찍은 것이다.







위의 사진들은 다롄 캐슬호텔 大连城堡豪华精选酒店(The Castle Hotel Dalian)이다.

이 중에 가장 위의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나머지 두 장은 중국의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의 백과사전에 있던 사진이다.


2011년에 혼자 왔을 때는 호텔이 건설 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013년에 다롄에 왔을 때는 주의 깊게 못 보다가

이번에 와서 보니 호텔이 거의 놀이동산 급이다.


이 호텔은 이 블로그 포스트의 가장 앞에 실린 사진의 왼쪽에 위치해 있는데

싱하이 광장과 바닷가 부근에 위치해 있다.


그냥 궁금해 하룻밤 가격을 알아보니 바다가 보이는 큰 침대의 방 경우

아침 포함 1,380 위안이다. 물론 2016년 1월 20일 기준으로 찾아본 것으로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조개 박물관 밖에 없던 곳에 이런 호텔과 앞에 대교가 생겼다니 몇 년 사이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대교가 없이 탁 트였던 해양이 그리운 것은 왜 일까.






2016년 기념으로 다녀온 랴오닝성 서부 지역 연해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위의 사진은 다롄에서 잉커우(영구; 营口) 사이에 위치한 해안가인데

해안가가 얼어있었다.


전에 랴오닝성 쪽에 위치한 보하이만(발해만; 渤海湾) 북부의 해안이 언다는 말을 들었는데

잉커우항도 완전 부동항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직접 들었다.


몽골의 천연자원과 동북3성의 해양 출로로서의 기능이
겨울에 그렇게 원만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동북3성의 곡물이 나진항을 통해
중외중(中外中; 중국~외국~중국 내수물류처리) 물류라인이
실시되었다는 중국 관방의 신문 기사가 나왔다.


황해라인과 동해라인의 물류 라인 변화를
주시하며 공간을 바라보는 가운데
외교적인 문제가 겹치며 셈이 복잡해진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본 풍경 사진들이 있는데 차츰 몇 가지 올리도록 하겠다.

이로써 2015년 10월 경에 환동해경제권의 두만강 유역 탐사 + 단둥 지역에 더불어

랴오닝성 서부 지역까지 다 돌아본 셈이다.


조금 더 자료를 읽어봐야겠지만

연구해봐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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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자료는 일대일로 관련 발표 때 제가 사용했던 자료입니다.

 

톈진항(천진항 天津港) 빈하이신구(滨海新区)의 폭발사고로 많은 사상자들이 나왔습니다.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말씀 전하며 빠른 회복 및 복구 기원합니다.

 

톈진항의 폭발로 많은 분들께서 톈진항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언론 매체에서도 톈진항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요.

중국 내 톈진항의 역할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감히 몇 자 남깁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톈진항 개발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_북경, 톈진_천진, 허베이성_하북성)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개발 전략도 내었구요.

실제로 징진지 통관 일체화를 직접 처음 제안하기도 했었구요.

 

그러면 톈진항 개발을 왜 중시했을까요?

 

제 사견이지만 수도권 개발이 너무 더디기 때문입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 경제권은 수도권을 비웃고도 남을 정도이고,

홍콩~마카오~선전을 트라이앵글로 하는 주강 삼각주 지역도 세계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구요.

 

그래서 톈진항을 중심으로 위에서 언급한 징진지 경제 일체화 전략을 펼침과 동시에

톈진항이 보하이만(발해만; 랴오닝성_요녕성, 허베이성_하북성, 톈진시, 산둥성_산동성) 경제권의 중심 역할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물동량을 살펴보면 톈진항의 총 물동량은 5.4억 메트릭톤(MT)로 중국 내 4위이며

컨테이너 물동량은 약 1400만 TEU로 중국 내 6위 입니다.

 

총 물동량 순위는

닝보-저우산宁波-舟山, 톈진天津, 탕산唐山, 광저우广州, 쑤저우苏州, 칭다오青岛, 르자오日照, 친황다오秦皇岛, 옌타이烟台

 

컨테이너 물동량 순위는

상하이上海, 선전深圳, 닝보-저우산宁波-舟山, 칭다오青岛, 광저우广州,

톈진天津, 하이커우海口, 잔장湛江, 다롄大连, 샤먼厦门 등의 순서입니다.   

 

물동량 순위 출처 : http://cafe.naver.com/drimtru/24945

 

톈진항은 이렇게 보하이만(발해만)과 징진지(京津冀)의 중심 허브 항만임과 동시에

서부지역까지 연결되는 배후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위의 물동량 순위에서 확연히 드러나지만

총 물동량 순위에서 톈진항이 2위, 컨테이너에서는 6위로 나오는데

그 이유가 톈진항의 배후지가 헤베이성, 네이멍구를 포함 신장위구르지역을 커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톈진항의 배후지가 산업화가 더딘 지역임과 동시에 주로 에너지 자원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에

컨테이너 화물의 비중이 떨어지고 벌크화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이 수도인데 톈진항이 주로 벌크화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떤 각도에서 보면 베이징 자체가 장강, 주강 경제권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잠재력이 높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물론 제 사견입니다.......)

 

그래서 현재 톈진항은 각종 개발을 통해 수도권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1) 2005년 10월 빈하이 신구, 국가급 신구 지정 개발

2) 2015년 4월부터 중국(톈진) 자유무역시험구 실시

 

현재 2015년 8월 기준으로 13개의 국가급 신구가 있습니다.

(언젠가 중국 국가급 신구만 따로 정리할까 합니다)

 

국가급 신구는 국무원이 지정한 개발지역으로 지역 개발의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개발 전략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구역을 의미합니다.

 

물론 현재 국가급 신구를 통해 큰 혜택을 보거나 이런게 크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나

최근 중국 국무원 차원에서 국가급 신구 활용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그 의미를 크게 축소할 필요가 없을 듯 하네요.

 

1992년 10월 상하이 푸동신구가 국가급 신구로 지정되고

두 번째로 톈진항 빈하이 신구가 국가급 신구로 지정되었습니다.

 

 

위 그림 출처: Biadu

 

이번에 화재가 난 곳도 바로 이곳 빈하이 신구 지역이지요.

컨테이너 항만이자 완성 자동차 야적장을 갖춘 항만으로 개발이 한창이었던 것이죠.

 

빈하이 신구는 톈진 동부 연안에 위치한 곳으로 육지면적으로는 2,270㎢입니다.

톈진시 시 중심과는 40km, 베이징과는 1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2013년 10월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가 실시되었고

2015년 4월에는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가 확장됨과 동시에

톈진_천진, 푸젠_복건, 광둥_광동 자유무역시험구가 제2의 자유무역시험구로 지정됩니다.

 

이때 톈진이 자유무역시험구로 지정된 것은 결국

보하이만 지역과 징진지 경제 일체화 지역의 개발을 이끌 허브로 톈진항을 지정한 것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관련된 그림은 맨 위 그림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자유무역시험구는 중국의 각종 제도 개혁과 더불어 대외 개방을 위한 시험 장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특히, 금융, 해운, 물류, 통관, 서비스업, 관광을 망라하는 제도 개혁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시장에 더 힘을 실어주는 제한된 지역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네거티브리스트를 축소해가면서 외국기업에게 주식지분율 51% 까지 확장해주는 사업 분야도 있구요.

 

톈진항의 가치를 판단하실 때는 이렇듯

빈하이 신구 개발, 자유무역시험구, 징진지, 발해만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톈진항 지역의 폭발로 많은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톈진항에 현재 선박의 항만 입안이 자유롭지 않고 통관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이로 인해 톈진항 주변 항만으로의 입항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수도권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강, 주강 경제권의 발전은 안정적이지만

수도권 경제권 발전을 위한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톈진항에 대한 제 낙서 마칩니다.

글을 작성하시거나 그럴 때 많은 참고되셨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창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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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주변, 바로 위에 장강(양쯔강), 바로 아래에 항저우 만-닝보-저우산. 이번에 저우산에 항저우 대교를 타고 다녀옴.

상하이에서 렌트한 차 타고 네 시간 정도 가면 저우산에 도착. 저우산 관련 간단한 소개 정리 번역함.

 

 

 

저우산(舟山) 소개

 

 

이창주 

 

중문

舟山

영문이름

Zhoushan、Chusan

면적

2.22만 km²

(해역 포함)

인구

112.13만 명

(2010년 기준)

행정 구역

지급시(地级市)

소속 지역

중국 화동, 절강성

지리적 위치

항저우 만 동쪽

동중국해 부근

관광명소

국가급 풍경명승구-보타산 풍경명승구, 승사열도 풍경명승구

성급 풍경명승구-대산도풍경구(岱山島風景区), 도화도 풍경구(桃花島風景区)

 

 

저우산, 중국의 태평양 출구

 

저우산은 절강성 현급 도시이다. 139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다. 전국 섬의 5분의 1이다. 섬에서 저우산 섬이 제일 크다. 2.22km²이며, 해역 면적은 2.08만km² 내륙 면적은 1440km²이다. 저우산은 어업, 항구, 관광을 주업으로 하며 중국 최대 수산, 가공, 소비지이다. 동중국해 어류 창고라는 별명이 있다.

저우산은 상하이, 항저우, 닝보 3대 도시 클러스터와 장강 삼각주 등 넓은 배후지를 가지고 있고, 태평양을 향하며 비교적 우월한 지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저우산은 중국 남북 연해 항선과 장강 라인과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장강 유역과 장강 삼각주 대외 개방의 해상 문호 및 통로이며 아시아태평양 신흥 항구도시로서 부채꼴로 펼쳐나가는 형세이다. 동쪽으로 태평양과 마주해 동쪽 원해 지역 국제 항선이 있다. 저우산은 중국 대륙 지구의 유일한 태평양 해상 전략의 중요 기지역할을 하고 있다.

 

 

저우산 군도, 중국 해양 경제 신도심 부상

 

저우산 신도심은 국가 해양 경제 강화의 전략지역 중 하나이다. 중국의 첫 번째 군도 신도심으로서, 2011년 3월 14일, 저우산 군도 신구는 정식으로 전인대 1·25계획에 포함되었다. 관련 계획에서 저우산이 싱가폴, 홍콩과 같은 세계 1류 항구도시를 목표로 한다는 것, 저우산이 장강 유역의 경제를 이끌기를 희망한다는 글을 담고 있다. 2011년 6월 30일, 중국 국무원은 정식으로 절상성 저우산 군도 신도심을 비준하여, 저우산은 중국 상하이 푸동, 톈진 빈하이, 그리고 충칭 량지앙에 이어 국가급 신도심이 되었다. 또, 첫 해양경제 주제로 한 국가급 신도심이기도 하다.

 

 

저우산 수산업, 동중국해 어류 창고

 

저우산은 “동중국해 어류창고”라고 불린다. 저우산 근처 천혜의 해양 환경으로, 물고기 먹이가 풍부하다. 이런 이유로 근해외해 물이 탁하고, 각종 물고기와 새우가 서식, 번식, 성장, 회유하는데 양호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 환경으로 저우산 어장은 중국의 뛰어난 어장을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저우산은 어업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저장(절강), 장쑤(강소), 푸젠(복건)과 상하이 등지의 어민들이 어업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어장 내에 해양 생물이 1163종에 달하며, 식물성 플랑크톤이 91종, 동물성 플랑크톤 103종, 저생 동물이 480종, 저생 식물이 131종, 어류는 358종이다. 부세(Pseudosciaena crocea), 황다랑어, 갈치, 오징어가 4대 주요 수산물이며,

바다장어(海鳗), 광어(左口鱼), 준치(鳓鱼), 삼치(马鲛鱼), 고등어(清华鱼), 꽁치(秋刀鱼), 병어(鲳鱼), 오징어(鱿鱼), 꼴뚜기(小鱿鱼), 문어(八爪鱼), 주꾸미(小章鱼), 노래미(石斑鱼), 꽃게(梭子蟹), 새우류 등 40여종의 주요 수산물이 잡힌다.

 

 

저우산 어장의 중심 - 셩산(嵊山shengshan)

 

저우산 어장은 크게 따지(대즙大戢)어장, 셩산(승산嵊山)어장, 랑깡(랑강浪岗)어장, 황저(황택)어장, 따이취(대구)어장, 쫑찌에산(중가산中街)어장, 양안(양안洋鞍)어장, 찐탕(금당)어장으로 나뉜다.

 

 

도련(島連) 사업, 바다 위 섬을 잇는 대교

 

저우산은 해양 섬 도시로서, 해양으로 떨어져있기에 해양섬 경제가 발전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저우산은 대륙과 섬을 연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저우산에 연결되어 있는 대교의 주교는 20개이고, 이 대교는 대륙과 각 섬들을 연결하고 있다. 이는 해양경제의 생명선이다. 1999년 9월 26일, 저우산 해양 대교 첫 대교인 천강(잠항)대교가 정식 개통하고, 이후 찌아오먼(초문礁门)대교、타오야오먼(도요문桃夭门)대교, 씨호우먼(서후문西堠门)대교, 찐탕(금당金塘)대교 완공, 저우산 해양 대교가 2009년 12월 25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관련 자료 출처 : baidu ba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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